제1장. 더 나은 '나'를 위해
인간은 누구도 존재론적 불안과 균열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절망이 아니라 모종의 평안을 얻게 된다.
니체든 공자든 맹자든 역시 다들 자신의 존재론적 불안과 균열을 떠안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게 된다.
불안과 균열이 인간 보편의 문제임을 깨닫게 된 이는 자신의 불안과 균열 역시 그다지 특별한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니까 말이다.
스피노자의 자유
'매일 아침6시에 일어난다!'는 '규칙'에 의해 형성된 '체계'를 반복하는 '루틴'을 따르는 삶을 산다. 그는 자유로운가? 아니다.
그의 규칙은 사회에서 정한것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서만 존재하며,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행동하도록 결정하기 때문이다.
외부의 영향받지 않고 오직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서만 행동하기 때문에 자유롭다.
오직 자신이기에 따를 수밖에 없는 필연성의 '법칙'을 발견하고, 그 법칙에 따른 '체계'를 만들어 나가며, 그체계를 반복하는 '루틴에 따르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진정을 자유로운 삶이라고 말한다. 자유는 '규칙'의 밖에 있지 않다.'자유'는 '규칙'안에 있다.
스피노자의 의지
'노력하면 된다!'는 말이 제일 싫었다. 그건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묵묵히 노력할 수 있음. 그 자체가 이미 특별함이다.
묵묵함은 강한 의지에서 나온다.
'의지'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자유원인'이 아니다. 의지는 외부원인에 영향을 받아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것이다.
의지는 동기가 있어야 된다는 말인것으로 판단된다. 살을 빼든 공부를 하든 , 의지를 불러일으킬 원인을 찾아 나서야 한다.
기쁨을 주는 대상을 만나게 될 때 자신도 놀랄 만큼의 강건한 의지를 지닌 자신을 만나게 된다.
공부,운동,다이어트 등 지속적인 노력이 들어가는 일들은. 그것이 나에게 기쁨이든, 성취감이든 어떤 긍적의 보상이 어려움보다 클 때 지속 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시험공부의 고통보다, 합격의 기쁨이 커야 그 고통을 참아 낼 수 있지 않을까?
스피노자의 성취
여기서 스피나노자의 생각의 깊이를 이해 할 수 있었다.
스피노자의 사유 체계
"모든 개물은, 즉 한정된 존재를 갖은 유일한 모든 것은, 마찬가지로 한정된 존재를 가지는 유한한 다른 원인에 의해 존재하고 작용하도록 결정되지 않은 한 존재할 수도 작용하도록 결정될 수도 없다.
그리고 또, 이 원인도 한정된 존재를 갖는 유한한 다른 원인에 의해 존재하고 작용하도록 결정되 않는 한 존재할 수도 작용하도록 결정될 수도 없다. 이와 같이 무한히 반복된다.
이 말은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기고, 그 인연이 다하며 소멸한다는 사상과도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내가 있어야 너가 있고, 네가 있어야 나도 있는 것이다.
종이는 나무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고, 나무는 태양, 비, 흙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우주 온 만물은 그렇게 이어져 있다. 이 얼마나 신비로운가?
인간의 성취도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인간의 의욕과 욕망도 외부 원인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인간은 그 원인을 알지 못한다.
대기업에 가고 싶었다. 간절히 원했다. 합격의 기쁨은 잠시, 길고 깊은 슬픔이 찾아왔다. 직장생활 내내 답답했고, 공허했다.
그 외부 원인은 돈 많이 주는 직장이 최고야!라고 말했던 친구, 선배, 부모 더 나아가 세상 사람들의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는 것인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정말 어렵다. 그 말의 깊이를 알면 알수록 대단한 말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의욕'과 '욕망' 아니다. 그 간절한 꿈에만 시선을 고정시켜서는 안 된다. 어떤 외부원인으로 인해서 자신의 의욕과 욕망이 생겼는지를 물어야 한다.
스피노자는 '신'이란, 세상을 초월해 있는 어떤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세상 자체, 즉 자연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제2장 더 편안한 '마음'을 위해
모든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바람. 물. 태양. 채소. 고기 등등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모든 자연에는 타인도 포함된다. 이것이 문제다. 타인은 여타 자연물처럼 손쉽게 '목적원'으로 취급하기 어렵다. 타인은 나와 등등한 인격체니까. 이것이 타인이 불편하고 불쾌한 근본적인 이유다. 타인은 나와 동등하기 때문에' 인간의 이익을 위한 원인으로 여기기 어렵다.
신분제는 '타인'마저 '인간의 이익'이라는 목적을 이루게 할 원인으로 취급하려다 발생한 비극이다.
지독히도 자기중심적인 인간은 자신과 다른 사람이 싫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모두 불쾌하고 불편한 무질서를 만들어내는 존재라 여겨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사람이 싫은 이유, 과잉된 자의식
타인은 그 자체로 단독적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타인은 나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와 다른 타인이 불편하고 불쾌한, 그래서 싫은 이유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의 과잉된 자의식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자의식이 과잉된 존재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 사람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어졌다"라고 믿을 만큼 과잉된 자의식을 갖고 있다.
'나는 얼마나 세상을 내 중심으로 바라보았는가? 아프게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성찰을 통해, 자연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깨달을 수 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세상의 모든 자연물이 어떤 것을 위해 존재하는 '목적원인'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자기부정- 자기부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까요?
정직하게 말하자. 우리는 자신을 싫어한다. 자본주의는 이미 존재하는 자기부정을 증폭하여 상품을 판다.
자기부정의 기원은 '완전성'
'내가 싫은 이유가 뭘까? 얼굴이 못생겨서, 키가 작아서. 뚱뚱해서. 자기부정의 근본적인 이유는 '완전성'에 있다. 우리 마음속에는 저마다 '완전성'이 있다. 그것이 우리가 자신이 싫어진 근본적인 이유다.
내가 이미 완전하다는 것을 잘하는 게 있든 없든, 키가 크던 작던, 나는 이미 완전하다는 것을 가슴깊이 받아들여보자.
열등감 때문에 작아지지 말자.
그것은 남과의 비교에서 온다.
어떻게 내가 남과 비교될 수 있는가?
똑같은 인간이라 비교하는 마음이야 인정하지만,, 나는 나고 너는 너다. 내가 잘하는 것이 있고,,
네가 잘하는 것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다만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못 찾았을 뿐,,,, 그것을 찾고 노력은 기본적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유리멘털
유리멘털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신체의 존재를 긍정하며 그것에 충분히 집중해야 한다. 신체에 집중할 때, 정신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기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에 집중하면 그 끝은 필연적으로 정신 마비다.
신체에 집중하라!! 그래야 기분에 지지 않을 수 있다.
강철멘털의 세 가지 법칙은
첫째. 일단 몸을 움직일 것. 그래서 정신으로 과도하게 쏠리려는 에너지를 신체로 돌려놓아야 한다.
둘째. 광장의 신체를 긍정할 것.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는 경험을 늘려나가야 한다.
셋째. 밀실의 신체를 긍정할 것. 차분하게 자신의 몸의 고유한 호흡, 속도와 리듬을 느끼는 경험을 늘려가야 한다.
피해의식
어린 시절, 부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아버지의 술주정, 폭언, 폭행등 집안 분위기는 항상 지옥 그 자체였다.
이 모든 것은 피해의식이다. 피해의식이란 무엇인가? 피해받은 기억으로 인한 과도한 자기 방어다.
피해의식은 근본적으로 나쁜 기억에서 온다. 피해의식의 해약은 대화 불가능이다.
피해의식이 심한 사람들과는 대화가 어렵다. 그들은 피해의식 때문에 단어 하나에도 감정적으로 격양되거나 냉소적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피해의식으로 인해 피할 수 없었던 대화 불가능,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이 문제다.
피해의식은 우리네 삶을 불행하게 한다. 나쁜 기억으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스피노자의 기억이란? 내 몸의 변화를 생각하는 것이 '기억'이라는 의미다. 우리는 많을 일들을 겪지만 그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오직 내 몸의 변화를 초래할 정도로 강렬한 일들만 기억한다. 기억은'인간 신체의 본성과 외부 물체의 본성을 포함' 하는 것이다.
'기억' 되려면, 신체의 변용을 일으킬 만큼 외부 물체들로부터 자극받아야 한다.
"인간의 신체를 한때 자극하여 변화시켰던 외부 물체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거나 현존하지 않더라도, 정신은 그것들을 마치 현존하는 것처럼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정서적 자기 방어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쁜 기억에서 벗어나는 법
새로운 자기 인식은 과거의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억을 만듦으로써 가능하다.
과거의 나쁜 기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것이다.
고통의 가해자는 참 잘 사는데,,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도 전부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이다.
피해를 받은 우리는 참 힘든 것이,, 혹시 내가 잘못해서 그런 피해를 받았나? 갑자기 혼돈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아버지한테 잘못해서 그렇게 맞은 것인가? 초등학생이 잘못하면 얼마나 잘 못을 했을까?
부모 자식관계는 기본적으로 악연이라 생각한다.
죽을 때까지 따라오는 정말 질기고 질긴 인연이다.
악연이 되지않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오로지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 이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내가 행복하고 그것이 넘쳐 나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물들여야 한다.
지난날의 아픔은 충분히 느껴야 한다. 그래야 치유가 될 것이다.
혼자 어디서든 아픈 과거를 눈물로 씻어내야 한다.
울고 또 울고 아픔이 없어질 때까지 감정을 느껴줘야 한다.
그리고 내가 나 자신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고, 내가 나의 아빠가 되어주자.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열심히 사느라 그동안 참 고생 많았어~ 앞으로 내가 너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게.
두려워하지마. 걱정하지마. 그냥 어린아이같이 이세상을 느끼고, 즐기고, 친절하고, 타인에게 세상에게 도움을 주고. 나는 행복하게 살자.
그렇게 살다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후회 없이 잘 살았다. 안녕하면서 가볍게 떠나가도록 지금부터 그렇게 살도록 하자. 어렵겠지만 그렇게 해보자.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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