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솔직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
남이 자신 보다 조금이라도 이익을 본 것 때문에 그토록 화가 나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온갖 핑계를 갖다 대는 어른은 대부분 옹졸하다. 그리고 절대 자신의 옹졸함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걸핏하면 이유 없이 기분이 나빠지거나 불쾌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자신을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유치하고 옹졸한 인간이면서도 훌륭한 어른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그 까닭을 모르는 것이다.
유아적 의존 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못하고 억압되면, 그 욕구는 죽을 때까지 영향을 미친다.
여섯 살짜리 손자를 둔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심적 갈등이 없는 사람은 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37. 자신감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이처럼 심적 갈등이 있는 사람은 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또한 남을 믿지도 않는다.
상대가 자신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 해도 그 사람의 마음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자기 자신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남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결점 때문에 버림받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바꿔 말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자체가 바로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다.
38. 자기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당신은 자신의 어떤 점을 남에게 감추려 하는가. 드러날까 봐 두려운가. 당신은 이미 마음속 깊이 스스로 자신감이 없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고, 다른 사람에게 그런 모습을 내보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자신감 있는 척 행동한다.
남이 알면 경멸하지 않을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알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자기의 본모습을 감춘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낼 때 비로소 다른 사람과 진정으로 가까워질 수 있다.
이런 괴리 속에서 진짜 내가 아니라는 느낌만 더욱 강해진다. 실제와는 다른 나를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해도 내면의 붕괴는 가속될 뿐이다.
결국운 살아가는 것이 불안하고 두려워진다.
노이로제 증세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심적 갈등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상대는 자신의 결점까지 전부 좋아해 주는데도 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세계가 자기중심으로 움직이는 사람의 비극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보다는 남에게 자신을 어떻게 인식시킬까 하는 문제만 온 신경이 쏠려 있다.
이렇게 보이면 사랑받고, 저렇게 비치면 미움받을 것이라고 제멋대로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상대의 마음은 자신의 예상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상대는 아무 생각 없는데, 혼자 망상 속에서 헤매고 있는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39. 사랑받는다는 것의 의미
사랑받는다고 해서 상대에게 굳이 뭔가를 해 줄 필요는 없다.
노이로제 증세가 있는 사람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상대에게 도움을 주려는 행동은 나쁘지 않지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상대의 호감을 오래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이런 사람은 지금 눈앞에 있는 다른 사람의 본모습을 보지 못한다.
47. 왜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압하는가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을 잃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지배적인 부모에게 감정을 억압받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의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어떤 대상에 대해 자연스러운 감정을 느끼기 전에 그 대상을 어떻게 느껴야 할지를 강요받는다.
의존성이 강한 부모, 즉 유아성이 남아 있는 부모는 아이와 다를 바가 없다. 자신의 유아성을 도덕이나 규범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허무감으로 괴로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는 일에 의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나는 '삶의 의미'를 찾아 철학 책을 이리저리 뒤지는가 하면 혼자 글을 써 보기도 하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선인들의 책을 뒤적이고 세상 끝까지 여행을 해도,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누른 채 인위적인 감정으로 살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무리였다.
스스로 느끼기도 전에 미리 '가치'와 '의미'가 정해진 세계에서 살아온 사람은, 나뿐 아니라 누구든 사는 일에 의미를 느낄 수 없게 된다.
이 세상에는 일그러지고 폐쇄적인 좁은 세계에 살면서도 고상한 세계에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선 그 세계를 벗어나야 한다.
50. 괴로울 때 괴롭다고 느낄 수 없다면
현실을 직접 경험하기 전에 미리 마음속으로 '좋은 현실'과 '나쁜 현실'을 정해 놓고, 그 일그러진 '현실상'에 따라 현실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마음이 초조한 것이다.
마음 한구석에 괴로움을 느낀다 해도 이를 부정하기 위해 '괴로울 리 없다'는 규범의식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일로 괴로워해서는 앞으로 살아가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마음속으로는 무척 괴로워하고 있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괴로울 리 없다고 되뇌어도,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괴롭다고 외치고 있다.
왜 자신의 실제 감정대로 느끼지 못하는가? 괴로움을 시인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두려운가? 자신의 존재가 부정되기 때문이다.
공포란 자신의 존재를 무시하는 대상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괴로운 일을 괴롭다고 느껴도 되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가망이 없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괴롭다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괴롭지 않아. 괜찮아'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금세 지쳐 버려 곧 무관심에 빠지고 만다.
무관심은 자기 방어이다. 이제 더는 이런 식으로 살 수 없다는 신호다. 스스로 감정을 억압하며 살아온 결과다.
지루해서 더는 참을 수 없으면서도 즐겁다고 생각해야만 하는 억압이 몇 년 혹은 몇십 년 계속된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51. 무기력은 인생의 가장 위험한 징후다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 의식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이렇게까지 뒤바뀌어 있는 한, 내면이 파괴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보통 그 사람을 보면 지쳐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런 사람은 늘 겁에 질려 있다.
중요한 존재의 기대에 부응하고 뛰어난 모습을 연기하기 위해 인간은 이토록 진정한 자신을 희생하고 있다.
자신의 실제 감정 즉 즐거움, 슬픔, 재미, 따분함, 기쁨, 외로움 등에 따르지 않고 공포심에 의지해 살아온 사람은 동력이 바닥날 때 있다.
공포심마저 그 사람을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제 공포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다했다. 무기력하고 만사가 귀찮으며 단지 육체가 숨을 쉬고 있기 때문에 산다는 의미밖에 없다.
느낀 대로 느끼지 못하며 살아온 사람의 결말이다.
52. 훌륭한 자신, 사랑받는 자신의 이미지를 버려라.
무기력에 빠지기 전에 자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회복 부 가능한 상태가 되기 전에 자신을 깨달아야만 한다.
어떤 사람을 마음속으로 두려워하면서도 좋은 사람이라고 의식하지 않는가?
당신에게 처벌을 내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당신이 마음속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당신에게 처벌을 내리는 사람이다.
처벌을 통해 당신은 '공포'라는 것을 배웠다. 두 번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 그 후로는 처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조작하며 살아왔다.
지배적이며 소유욕이 강한 부모는 아이에게 그처럼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상처를 주는 일이 많다.
자신이 훌륭한 인간이라는 자기상에 매달리는 이유는 지금껏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그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자기상을 소중히 생각하며 살아왔다. 어쩌면 목숨보다 귀하게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그는 다시 태어나려 하고 있다. 따라서 소중히 여겼던 자신의 이미지를 버려야 한다.
'소중히 생각했다'라고 하면 그럴듯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실은 '매달렸다'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그렇게 자신의 이미지에 매달려 내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이미지에서 손을 놓아야 한다. 물론 불안이 뒤따른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훌륭한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매달려 있을 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약하디 약한 자신'이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따라서 훌륭한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버려야 한다.
지금 매달려 있는 이미지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훌륭한 자신'이라는 이미지를 버린다고 바람직하지 못한 내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강한 나. 결단력 있는 나, 믿음직스러운 나, 사랑할 줄 아는 나, 행동력 있는 나, 도전하는 나, 자신감 넘치는 내가 되는 것이다.
자신을 믿지 않기에 훌륭한 자신을 연기해서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훌륭한 자신'이라는 이미지로 약한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버리기 힘든 것이다.
53. 부모를 벗어난다는 의미
다른 사람을 지배적으로 대할 때 나는 내가 아닌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다. 내 마음속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닌 바로 지배적인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불만이 쌓여 지배적으로 대할 때 나는 내가 아닌 그토록 두려워했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내 자아는 바로 아버지 자신이었다.
어릴 적 두려워했던 아버지가 되어 나 자신은 어디에도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내 마음속은 스스로 내면화한 지배적인 아버지에게 점령되어 그 외의 것은 전부 추방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스스로를 성장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다른 사람을 지배적으로 대하거나 남을 비난하고픈 생각이 들면 필사적으로 그 감정을 억누르고 나 자신으로 돌아오려고 노력했다.
부모에 대한 자신의 실제 감정을 깨닫는 것은 분명 심리적 독립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실제 감정을 깨닫는다고 해서 자율성을 손에 넣은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자율성을 키워 가는 일은 또 다른 작업이다.
자신이 의존적임에도 애정이 두터울 뿐이라고 여기므로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가령 부모에 대한 증오를 의식하게 되면 이로써 자신이 심리적 이유에 성공했다고 여긴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에 대한 자신의 태도, 남에 대한 자신의 감정, 자기 자신에 대한 감정 등을 바꿀 수 있어야 비로소 심리적으로 독립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 감정을 깨닫지 못하면 의존성을 극복하기가 어렵다. 깨달은 것만으로 마음을 놓고 있다면 이는 의존 대상을 바꿨다는 의미밖에 안 된다.
부모에게 벗어난 대신 자신의 배우자에게 의지한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결국 대상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점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어른이 된 후에도 나는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과 있을 대조차 상대의 비위를 맞추려 했다. 그만큼 사람과 어울리는 일이 피곤했다.
55. 남은 남일뿐 당신에게 상처 줄 힘 따위는 없다.
항상 자기 보호에 신경 쓰지 않으면 불안해서 자신도 모르게 방어적이 되지만, 조금이라도 냉철하게 생각한다면 상대방이 그토록 위협적인 존재가 아님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을 위협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방어적 태도이다.
의존적인 태도를 버리면 자기 혼자 있을 때와 같은 편안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수 있게 된다.
56. 남과 같이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생색내기 좋아하시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나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에게 부담스러운 존재일 뿐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어릴 때부터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생각을 바꾸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내가 남에게 부담스러운 존재라고 믿게 되면 나 또한 남이라는 존재가 반갑지 않다.
나는 성인이 된 후에도 다른 사람과 사귀는 일을 진심으로 좋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타일렀다.
다른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이 불편하다고 해서 피하기만 하면 끝내 남의 호의를 느낄 수 없다.
58. 왜 남의눈을 신경 쓰는가
누구에게나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은 그만큼 사랑에 굶주려 있다는 뜻이다.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에게 어떻게 비칠까 신경 쓰는 것도 그만큼 사랑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릴 때부터 애정 욕구가 충족되었다면 남의 시선에 그렇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자신과 가깝지도 않은 다른 사람이 그토록 중요할 리도 없을 것이다.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다는 욕구가 행동의 주요 동기가 된 사람은, 자기 마음이 사랑에 굶주려 있으며 이미 황폐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사랑에 너무 굶주린 나머지 이를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너무 굶주리다 보면 굶주려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자신을 소중히 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 너그러워진다는 뜻이다. 다정한 어머니가 나를 대하듯 자기 자신을 보살피는 일이다.
스스로 이해자가 되고 보호자가 되는 일이다. 절대 자기 자신에게 비판적이 어선 안 된다.
59. 부끄럼을 잘 타는 사람, 자만심이 강한 사람
허세를 부리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어떤 심리적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자만하는 사람도 비슷하다. 자만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못하며 자신의 세계를 넓히지도 못한다.
그리고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보잘것없는, 익숙한 자기만의 세계에서 혼자 득의양양하다. 그런 사람은 겁이 많다. 또한 비겁하다.
다시 말해 자만하는 사람은 겁 많고 비겁하며 지배적이고 아집이 세다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은 겁쟁이가 될 필요가 없다. 뭔가에 실패한다 해도 그 일로 자신을 질책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정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고 자신에게 비판적인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한다. 실패에 비판적이 되고, 뭔가에 도전하며 사는 것이 어렵다. 점점 겁쟁이가 될 뿐이다.
애정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자기 자신이야말로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존재임을 믿어야 한다. 진심으로 자신을 너그럽게 대해야 한다.
진심이 아니면 효과가 없다.

출처:unsplash
남에게 아무리 잘 보여 봤자 그 사람이 당신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결국은 당신 스스로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
남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 본들 그 사람이 허무한 당신 마음을 채워 주지는 않는다.
60. 자신을 관대하게 대하라
어른이 된 후에도 어릴 때 채워지지 않은 애정 욕구에 연연하며 남의눈을 의식하고 사느라 괴로워하는 당신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사람은 결단코 당신의 마음을 채워 주지 못한다.
거칠어진 당신의 마음을 더욱 거칠게 만들 뿐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기대에 못 미칠까 두려워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애정 욕구에 불만이 있다는 증거다.
사랑받지 못한 자는 두려워한다. 어릴 때 사랑을 듬뿍 받은 사람은 커서도 사랑한다.
나는 어릴 때 아집 센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어. 그래서 사랑받지 못했지. 하지만 이제 나 자시 늘 사랑해 보겠어.라고 결심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겠다고 결심해도 여전히 마음속으로 뭔가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 결심을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마음속으로 삶을 겁내고 있다.
마음속으로 다른 사람에게 나쁘게 비칠까 두려워하고 있다.
마음속으로 인생이 그리 즐겁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사람은 아직도 자기 자신에게 충분히 너그럽지 못한 것이다.
마음속에서 실제로 느끼는 '나'와 다른 사람 앞에서 가장하는'나'의 모습이 다르면 남과 친해지기 어렵다.
이런 만남은 아무리 계속되어 봤자 애정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 그러나 서로' 실제로 느끼는 나'를 숨기고 있기에 관계가 결코 깊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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